예배에서 현대문화 매체의 수용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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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서 현대문화 매체의 수용과 한계
(The Use and Limitation of the Contemporary Cultural Medium in Worship)
김 세 광(예배와 설교·조교수)
1.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수용에 대한 시대적 요청
2. 예배와 관련된 현대문화매체의 특징과 다양한 형식
3.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의 정당성
4. 예배에서 현대문화 표현의 역할
5. 현대문화의 위험요소들
6. 실천적 방안.
7. 현대적 문화의 적극적 수용과 예배의 본질 유지의 과제를 위한 지침
그동안 현대문화를 예배에 수용하는 문제는 1970년대에 는 주로 대학 채플이나 젊은이를 대상으로한 교회나 선교단 체등에서 실험예배의 성격으로 다루어왔는데, 1980년대에 들 어오면서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와 경 배와 찬양(Worship & Praise)식의 CCM사역, 그리고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willow Creek Community Church)나 새들백 교회(Saddleback Valley Community Church)등 현대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급격한 성장을 이룬 현대 교회들의 등장 으로 본격적으로 이슈화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에 영향을 받 은 온누리 교회나 사랑의 교회등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 하였는데, 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점차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은 통합측 장로교회의 21세기 교단발전 을 위한 정책 제안서에서 예배에서 현대문화의 적극적인 수 용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예배에서는 찬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므로 찬송의 발전적 개발과 보급이 필요하며 드라마나 멀티 비젼의 사용등 새로운 예배 의식의 개발이 필 요하다. 21세기 교회는 균형있는 교회 음악을 활 성화시키므로써 급변하는 현대 문화 휩쓸리고 있는 성도들을 바른 찬송 생활에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삶에 지치고 고통으로 찌들린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활력적인 찬양을 통해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고 일 주일 내내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감격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찬송가가 많이 작곡되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흥겨운 우리 민 족의 전통 가락의 과감한 도입이나 신세대 젊은이 들이 흥미를 가질 빠른 템포의 현대적 음악 기법도 찬송가 작곡에 신중하게 선별되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드라마 예배라든지, 다중 영상 매 체라든지 멀티 비젼의 과감한 수용이라든지 현대인 에게 적합한 예배의식의 개혁 가능성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이들을 얼마나 효 율적으로 성경적으로 활용하여 교회 성장과 교회 성숙과 연결시키느냐이다. 참된 예배 생활의 회복 을 위해서 신 세대를 위한 새로운 예배의 틀도 모 색되어야 한다. 정보시대를 맞이하여 교회에 모이 지 않고 자기 집에 앉아서 예배하는 첨단 영상매체 들을 통한 교회(cyber church)의 예배가 머지 않아 등장하리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 이다. 그리고 21세기의 교회를 이끌고 갈 바로 다 음 세대만이 아니고 그 때의 젊은 세대들을 예상하 고 그들을 위한 예배의 틀도 연구 개발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고서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가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예배와 회중을 둘 러싼 현대문화의 현상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미래교회의 예 배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제 안서는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제안서의 과제를 발전시켜서 현대문화 시대를 사는 회중들이 드리는 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역할 과 한계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현대문화매체를 수 용하되 전통예배의 본질을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과제인데, 이 를 위해서 먼저 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필요성과 다양성, 그리고 정당성을 밝힐 필요가 있다.
1.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수용에 대한 시대적 요청
역사적으로 예배는 역할과 형식에 있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여 왔다. 예배의 변화는 서양 문명의 발전과 그 시대의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초대교회의 카타콤 예배, 중세의 예배의 형식, 종교개혁의 예배 갱신, 청교도의 예배 모범, 오순절 교회의 예배의 모습들은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나 사상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예배가 변화되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앞장 서서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예배의 회중들의 관심과 요청이 더 큰 영향 을 미쳐왔다. 이런 관점에서 예배에서 문화매체의 사용에 대 한 이슈도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왜 예배에서 새로운 문화 매체를 사용해야할까?
첫째는 현대 사회가 새로운 문화적 형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는 정보화시대, 영상문화시대, 또는 디지털시대라는 말들로 잘 설명될 수 있다. 활자가 발명되던 시대에는 인쇄물로, 라디오 시대에는 음성으로 하듯이 현 시 대의 산물인 멀티미디어를 예배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사용하 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경영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시대 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21세기에 승리할 수 있는 기업의 조건에 대해 소니 사 장인 이데이 노부유키는 패러다임과 장이 바뀌었는데도 과거 의 성공체험에 안주해 과거 방식을 고수하면 결과는 실패뿐 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성공경험을 완전히 포기하고 구조 자 체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이런 대변혁기엔 과거식 구 조를 해체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진공관 TV의 최강자는 도시바였는데, 트랜지스터 시대로 바뀌자 도시바는 밀려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진공관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조직과 모델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날로그 에서 디지털로 모델 자체가 바뀐 지금은 50년간 누적된 낡은 시스템으론 대응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하면서, 그의 임무는 소니의 낡은 구조를 파괴해 네트워크 시대에 맞는 새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비록 경영방식을 말하는 것이지 만, 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필요 성을 강조하는 점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예배의 역사를 보 아도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안동교회 유경재목사는 멀티미디어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 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글자 속에 갇히게 되면 서 교회는 다시 형식화되고 제도화되고 교리화되어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과 생동감을 잃었다고 개탄하고 있는데, 따라서 예배도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찬양에도 영감이 없고, 기 도도 허공을 치고 있면서, 영성을 깨우기는커녕 회중의 감성 조차 자극하지 못하는 맥빠진 예배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 판한다. 그의 대안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이하면서 멀티미 디어적인 교회로 거듭남으로서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멀티미디어가 하나님께서 회중의 영성 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주신 도구라고 확신하면서, 영감있는 다양한 예배와 찬양과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의 주장이 멀티미디어에 대한 위험성을 의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리하게 들릴 수 있으나, 회중의 수동적이 고 형식적인 자세를 탈피하고 적극적인 이해와 참여를 위한 제안으로서는 설득력이 있다.
둘째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문화적 행동을 하기를 원하는데, 신세대 회중들에게 현대문화매체는 필수 적인 수단이며, 이러한 매체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창조하 고 싶어한다. 예를들면, 멀티미디어 예배의 경우, 40대 이상 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으나, 연령 층이 낮을 수록 더욱 친근하고 신선한 주제가 된다. 요즈음 신세대의 빠른 변화를 그들의 독특한 별칭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예를들 면 30대 80학번 60년대생을 뜻하는 386세대, 미국의 구분이지 만 46년에서 65년까지의 베이비붐세대, 66년에서 76년까지의 X세대, 77년에서 Y세대로 나눈다. 각 세대마다 특징이 있는 데, 386세대의 경우는 문학을 영상언어로 바꾼 세대이다. 이들 세대의 문학도들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든 방송작가든 글로써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도 문학적 상상력을 담아내는 창작장르로 보고 접근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이런 변화는 뚜렷해지는데, 따라서 X세 대와 Y세대는 영상세대 또는 디지털세대라고 불린다. 신세 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기성세대와 크게 구별되는 점은 기성세대들이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수 용하는데 익숙한 반면, 이들은 각자가 이미지를 창조하고 싶 어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예배에서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찬송을 할 때도 온 몸을 사용하는 것을 더욱 자연 스럽게 느끼고, 광고도 음성이 아니라, 영상을 통한 광고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신앙의 표현을 드라마나 어떤 몸짓으 로 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세대이다.
2. 예배와 관련된 현대문화매체의 특징과 다양한 형식
오늘날 현대문화의 이슈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 포 함하고 있는데, 즉, 신념, 행동양식, 언어, 특정시대나 특정 그 룹의 삶의 방식, 관습, 예식, 예술, 발명품, 과학, 전통, 사회의 지적이나 예술적 업적등이다. 이들 현대문화매체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로 빠른 확산성이다. 이는 신문, 잡지, TV, 영화와 같은 매스미디어의 급격한 발달 때문인데, 여기 에 여가시간이 증가와 더불어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가 많아 진 것도 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의 문 화가 형성되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둘째는 문화 주체자들의 소그룹화이다 종전에는 문화를 비 교적 시대적 구분으로나 광범위한 지역단위로 구분했으나, 이 제는 시기나 지역의 범위가 점점 작은 단위로 축소되어 구분 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구분 정도였으나, 이제는 신세대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x세대, y 세대, 386세대, 서태지세대등으로 구분한다. 셋째는 다양성 과 포괄성이다. 이러한 현대문화는 개성을 중시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시대적 정신의 토양에서 맺어진 열매이다. 예배에서 현대문화를 적용하려고 할 때 예전처럼 더 이상 '시 청각'이라는 말로 구분하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따라서 현대문화를 예배에 수용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효과적 으로 하기 위해서 현대문화를 예술 문화, 과학 문화, 정신 문 화로 분류하여 다루는 것이 좋겠다.
1) 예술 문화
예술 문화의 분야로는 음악, 미술, 연극, 문학, 조각, 무용 등이 있겠는데, 이들은 내부적으로 각각 전통예술과 대중예술 이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에 음악의 경우, 최근 한국개신교예배의 이슈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대립 과 조화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의 기성교회들은 주일 예배에서 서구교회에서 소개한 찬송가와 서양고전음악을 바 탕으로한 성가곡을 예배찬송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서, 최 근에 설립된 교회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바탕으로한 복음송 또는 CCM이 사용되는데, 기성교회에도 청년대상 예배에서 거의 주된 찬송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때의 논의들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간의 토론에서 볼 수 있는 내 용들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는데, 대중문화(mass culture), 인 기문화(popular culture), 취향문화(taste culture)등으로 분류 될 수 있는 복음송에 관한 이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복 음송 또는 CCM을 예배찬송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사용한 다면 어디까지 수용하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복음송가수가 예배인도자인가? '경배와 찬양'식의 예배가 과연 대안 예배 가 될 수 있는가? CCM Concert와 예배의 차이는 무엇인 가? 등이다.
2) 과학 문화
과학적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신문, 잡지, 영화, 비디오, 멀티비젼, 컴퓨터 등이 여기 속한다. 이 시대를 멀티미디어 시대, 디지털시대, 영상시대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이 과학적 문화가 현대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멀티미디어시대에서의 예배에 대한 논의마다 이 과학 문화들이 가장 활발하게 등장한다. 여기서 멀티미디어란 각 각의 매체들을 하나로 묶어 효과를 극대화시킨 시스템으로 컴퓨터를 주로 말한다. 따라서 멀티미디어 예배란 예배에서 컴퓨터의 테크놀로지는 물론, 영상비디오와 같은 현대의 미디 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강대 위에 대형 스크린을 걸고 복음송 가사를 비추든지, 영상물을 보여주는 교회가 점차 증 가하고 있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위시해서 몇 몇 대형교회 가 지역마다 교회를 세워 OO성전이라고 부르면서, 본 교회 설교를 지역성전의 대형스크린에 동시에 생중계하는 것도 현 대문화적 현상 중의 하나다. 컴퓨터의 급격한 성장으로 컴퓨 터상에서만 존재하는 사이버교회(cyber church)의 출현을 기 정사실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교회에서는 전자화폐로 헌 금하고, 마음에 맞는 목회자의 설교도 시간을 초월해서 선택 할 수 있는데, 이 교회의 특징은 초시간성과 초공간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히 예배의 전통과 본질을 위협하는 것들 이지만, 현대문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3) 정신 문화
현대문화는 철학사조 또는 문학 사조등의 문화적 유행으 로 볼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환경에서 나타났 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로 보면 예배의 회중은 포스트모더 니즘의 정신의 수용여부를 떠나 포스트모던인이다. 예배에 서 창조(creation), 현존(presence), 총체화(totalization), 종합 (synthesis), 형식(form)대신 파괴(decreation), 부재(absence), 해체(deconstruction), 대립(antithesis), 반형식(antiform)등에 관심을 갖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다. 더구나, 이 사상은 진리의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정하고, 모든 현실을 가상현실화하고, 신지식을 담은 언어를 해체하려 고 하기 때문에, 예배의 본질을 유지할 수 없다. 예술에 대 한 것도 영속적인 것보다 유행을 의식하고, 미학적인 것에 있 어서 도덕적이나 철학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 즉 풍자와 분 노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사상이 끊임없이 예배의 회중 의 사고와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x세대, y 세대, 386세대등의 이외에도, 90년대의 서태지세대가 형성되는 것도 배경에는 이런 사상 적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통신세대, 디지털세대 로 불리는 Y세대가 미국의 강력한 소비층으로 등장했다는 뉴 스가 등장했는데, Business week의 최근 Y세대 특집에서 기 존의 스포츠 상표인 나이키, 리바이스등이 Y세대의 취향을 맞추지 못해 곤경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공산 진영붕괴 후 미국의 패권, 경기호황의 상황에서 자란 이들의 특징은 미디 어, 케이블 TV, 전문잡지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지와 유명인을 쓴 광고를 선호한 부모 세대와는 달리 유머 와 아이러니, 직설적인 표현이 담긴 광고에 반응한다는 것이 다. 이러한 세대들이 그들의 예배에서 자기들의 관심을 어 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믿음의 응답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 해서 주의 깊게 관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3.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의 정당성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의 정당성은 무엇보다 예배가 그 당시의 문화와 어느 정도라도 궤를 같이해 갈 때, 예배의 본질을 더 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관찰을 들 수 있다. 문화의 과정을 세속화로 이해하는 고가르텐의 말을 사용한다 면, 예배는 세속화될 때, 기독교신앙이 고착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어느 정도 세속화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과제가 남기는 하지만, 예배가 문화와 함께 가야하는 것은 분 명한 것이다.
그런데,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을 꺼리는 교회도 많은 데, 이는 그들 중 대부분이 반문화적이고, 반예술적인 성서이 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나 예술에 대한 성서의 이해 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겠으나, 성서가 예배에 지역 문화나 예술을 거부하고 있다는 주장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문화와 예술적 표현들을 무시하는 반성서적 주장에 불과하다. 프랭키 쉐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반문 화적이고 반예술적인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두가지로 분석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상생활과 분리된 영성, 즉 영성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아니라 스스로가 목적 이 되어 삶과 분리가 되므로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분 리가 일어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자연세계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속성, 재능, 노력 마저도 실용성에 따라 판단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화나 예술은 처음에는 영적이지 못하다는 편견 때문에 교 회의 지하실에 던져졌다가, 겨우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지 만, 교회의 실용주의적 입장에 따라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 자 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성서에서는 예술을 중요한 예배의 요소로 여 겼을까? 첫째, 예술의 창조적 성격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때문이다. 창조성과 예술적 가치야 말로 천지창조의 기록부 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창조적 재능이나 문화적 노력,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하나님 과 다른 사람의 창조성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등을 영적 으로나 신학적으로 정당화 시킬 필요가 없으며 그것들은 인 간이라는 존재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라고 역설하는 프랭키 쉐퍼의 호소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둘째, 신앙자체의 성격이 초자연적인 개념을 가시적 영상과 상징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한다. 어떤 유한한 언어로도 초 자연적인 진리를 완전히, 그리고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 에, 교회는 항상 어떤 예술적 형식에 의존해 왔다. 엘리아데 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것을 확인해준다.
어떤 종교적 상징물들은 예술적 표현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는 종교적 상징물의 속성은 가 시적인 형태를 빌려야 비로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성스러운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수단으로 하여 불가시적인 것을 재현해 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예술로 표현된 것은 그 가치관을 더 강화한다. 프란시 스 쉐퍼가 이것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푸줏간에 걸려 있는 한 덩어리의 고기는 단지 매달려 있을 뿐이지만, 렘브란트의 작품 "푸줏간에 매달린 쇠고기"를 보면 많은 것 을 생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예배의 공간을 꾸미는 상 징들, 예배에서의 찬송이나 설교의 언어도 예술적 표현을 통 해서 그 의미가 강화되는 것이다.
4. 예배에서 현대문화 표현의 역할
1) 커뮤니케이션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과제는 현대의 세계 속에 그리스 도를 전달하는 것인데, 현대문화매체들이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 는 현대라는 이 세계 속에 전달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의 이미 지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있다. 너무 신격화된 그리스도 의 실존 개념이어서도, 또는 단순한 인간 예수여서도 안된다. 회중의 고유의 문화적 사고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신약시대에 복음이 다양한 문화권에 전달되는 과정을 관찰하 면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현대문화 매체가 참된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예배에 크게 두가지 공헌을 한다. 첫째, 예배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다. 기독교적 커뮤 니케이션은 배타적이고 일방적인 것을 지양하고-이 점에서 매스 미디어와 구별된다- 개방성과 포용력으로 예배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따라서, 현대문화매체 속에 있는 공동 체의 결속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주의와 편견들을 경계하 고, 성별, 사회적 계급, 지역감정등을 초월한다면, 예배 안에 서 발생할 수 있는 분열과 소외, 고립, 장애물들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회중의 참여를 도와준다. 현대문화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구조에서 나오는 일방향성보다는 쌍방향 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회중이 예배에 능동적으 로 참여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능동적 참여는 회중 각 자의 달란트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사명을 갖게 해주고, 예배 에 풍요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2) 의미의 전달방식으로서 상징(symbol)
예배의 중요한 세 단어로 의미(meaning), 상징(symbol), 신비(mystery)를 말한다면, 예배는 신비와의 만남을 통해서 회중의 삶에 의미를 주었는데, 이 만남은 상징 또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상징의 중 요성을 강조한 말로서, 결국 예배에서 예술의 중심적 역할을 나타낸 것이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종교의 상징물의 속성은 가시적인 형태를 빌려야 하기 때문에 예술적 표현이라는 매 개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다시말하면, 성스런 예술은 가시 적인 것을 수단으로 하여 불가시적인 것을 재현해 낸다. 하젤틴이 예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예술은 자유의 길을 제시해 주며 회복시켜 주며 종교의 상투적인 말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감금된 진리와의 계약을 새롭게 하는데, 낡은 것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것을 신성하게 하는 위대하고도 찬 란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때는 이런 예술의 상징성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 자.
성스런 예술은 종교경험과 세계 및 인간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구체적인 형태로 재현한다. 그런 데 이런 전이가 전적으로 인간의 작업으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왜냐면 거기에는 신격이 스스로를 인간에 게 드러내어 형태나 형상으로 지각될 수 있도록 함으 로써 함께 참여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따라서, 예술 에 나타나는 모든 종교적 표현은 인간과 신의 만남을 보여준다.
3) 상상력과 창조성.
예배 회중의 상상력과 창조성은 예배를 풍요롭게 해주 는 요소들이다. 상상력은 회중들로 하여금 예배의 차원을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끌어 가게하고, 그리스도와 의 만남도 실감있게 하고, 세계에 대한 사명감도 고취시킨다. 창조성은 회중들로하여금 조물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임을 확인케해주고, 예배의 아름다움을 유지시켜준 다. 현대문화매체들은 회중들의 상상력과 창조성 강화시켜 줄 수 있다. 현대문화 속의 과학적 탐구나 예술적 노력은 상상력과 창조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는 모든 창조적 정신에 필수적인 정신적 균형은 과학적 탐구 와 문학적 상상력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에 의해 유지되어왔 음을 확신한다.
5. 현대문화의 위험요소들
예배에서 현대문화의 수용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모든 문 화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문화에는 예배에 해 를 끼치는 요소들이 많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문화에 대하여 경계해야할 것으로는 문화적 저급 성, 개인주의, 소비주의, 세속적인 악의 개념등이다.
첫째, 문화적 저급성을 경계해야한다.
저급한 문화는 예배의 가장 큰 방해꾼이다. 왜냐하면, 저급한 문화는 회중들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최 선을 다해 사용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하 나님의 선물들이 저급한 문화로 표현될 때, 하나님에 대한 아 름다움의 이미지가 파괴되므로,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저급한 문화를 정확히 규정짓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대개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결여된 예술과 인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결여된 문화가 보여주는 특 징들이 있는데, 조잡함, 무질서, 부조화. 모방성, 서투름등이 다. 이런 것들은 역동성이나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예배인도자들 중에는 예배를 역동적으로나 자연스럽게 이끌 기 위해서 이러한 저급한 문화들도 그대로 수용하는데, 이는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담긴 문화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예배인도자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오히려 사치스럽고, 비본 질적인 것들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싶다. 그럼에도 저급 한 문화를 정당화시켜주는 배경에는 실용주의가 있음을 알아 야 한다. 실용주의는 절약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조잡함, 부 조화, 모방과 서투름을 합리화시켜주며, 하나님께서 주신 재 능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실용주의에 뿌리를 둔 예배자는 예 배에서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부차적이고 사치스럽게 생각되 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예술이나 매스미디어 등 현대문화매체들은 교회성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예배 실도 아름다움보다는 보험회사나 자동차회사의 사무실처럼 전도목표나 실적을 전광판으로 표시하여 회중들에게 전도사 명을 각성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플랭카드의 색감의 미적 조화나 창의성 있는 언어에 대해서는 논의할 여유조차 없는 분위기라면, 현대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더욱 위험스럽 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를 도구로만 보고 수용하되, 조잡하 고, 모방하며, 무질서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최근, 복음송이 나 소위 열린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준비나 연구 없이 이웃 교회의 모습만을 모방하려는 시도들도 이런 위험에 빠질 가 능성은 매우 많은 것이다.
둘째, 개인주의를 경계해야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의 하나가 다원성이라는 환경 안에서 개인의 개성의 인정과 개인 즐거움과 자유를 강조하 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문화형성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과거 의 문화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한 것이 사실이다. 예배회중 은 각자의 믿음 표현에 있어서도 각자가 느끼는 대로, 과감히 표현하고 싶어하는데, 예를 들면 찬송을 부를 때 주위의 시선 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든지, 일어서서 손을 흔들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년예배에서 영상물을 제작하여 광고를 할 때도 제작자의 특별한 시각으로 편집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적극적인 예배참여와 자발적인 믿음표현이라는 면에서 기존 전통적인 예배에 신선한 도전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믿음의 표현을 개인의 감정과 느낌에 전적으로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다. 공동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공동체의 믿음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록 느낌이나 감정이 없어도 의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동예배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예배가 공연장처럼 관람하면서 감동 받으려는 분위기이다. 내가 감동 받아야 은혜스럽고 참된 예배이지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인 예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문제다. 현대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개인의 감동을 창출하고 효과 있게 하 려는 것이라면, 크게 우려해야할 일이다. 이러한 위험을 막 기 위해서는 회중 전체가 공감하고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참 여할 수 있도록, 현대문화의 수용은 약간은 보수적으로 움직 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 소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현대문화의 창조성과 예술성이 소비주의를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비쌀수록 아름답다거나, 많이 투자해야 창조적인 것 이 나온다던가하는 논리에 빠져서는 안된다. 위에서 지적한 서툴거나 조잡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물질과 전문가가 있어 야 한다는 확신도 위험하다. 창조성이나 예술성이 귀족들만 의 소유는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일반 서민층으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경계하는 것은 물질을 우상하고 탐욕을 조장하는 소비주의에 대한 것 이다. 물질만능, 소비지상주의는 하나님의 대적자이며, 예배 의 방해꾼이기 때문이다. 예배복장으로 깨끗하고 조화되는 옷을 준비하기 위해서 비싸고, 화려한 옷을 사야할 필요는 없 는 것이다. 예배실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 순금과 옥으 로 치장할 필요는 없다. 문화를 실용적 입장에서만 보는 실 용주의를 경계해야하는 것처럼,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치와 향 락을 정당화하려는 소비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넷째, 세속주의화된 악의 개념을 경계해야한다.
예배자들이 가장 혼돈하기 쉬운 부분이 문화라는 이름으 로 가장한 악의 모습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주의 자들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부부, 가족에 대한 신개념이나 혼전 섹스등은 현대문화라고 해서 수용할 수 없는 개념들이 다. 또한, 컴퓨터의 발달로 이야기되는 사이버교회(cyber church)도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혹자는 사이버교회가 공동 체에 대한 신개념이라고 예언적으로 설명하지만, 끝까지 거부 해야할 악의 개념이다. 시공을 초월한 주님의 몸으로서의 공 동체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현 재 함께 하는 공동체가 없는 성도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공동 체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사이버교회가 장점으로 세우는 무 시간성이야말로 공동예배를 시간성의 중요함을 상실한 것이 다. 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듣고 싶을 때 꺼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자리에서 들을 때 이해되고 살아있 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찬 또한 함께 한자리에 서 나눌 때 비로소 주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의식할 수 있는 것이다.
6. 실천적 방안
예배에서 현대문화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좋은 가에 대 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문화에 대한 지역교회의 이해 와 관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에 소개되는 것들도 교회에 따라 무리한 것들이 있겠는데, 이것을 소화하지 못하 는 교회라고 해서 문화적으로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 현대문화를 수용해야만 더욱 활력있는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은 아직은 혁신적인 분위기를 수용할 수 있는 교회에 한정될 것이며, 모든 교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이 다. 대부분의 교회는 아직도 현대문화의 수용을 꺼리고 있거 나,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는 전통예배에서 현대 문화들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를 그 가능 성을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1) 예술 문화.
음악, 드라마, 미술, 무용등의 예술적 표현들로 예배의 각 요소들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음악의 경우에, 최근에 활 발히 논의되고 있는 복음송의 주일예배 수용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많은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복음송 중에서 예배송으로 적합하고, 회중 에게 잘 알려진 노래를 선곡하여, 먼저는 헌금송이나 성가대 합창등으로 소개하고, 예배의 찬송으로 도입할 수 있겠다. 중보기도후나 성도의 교제시에 사랑과 기쁨과 간구를 주제로 한 복음송을 함께 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미술적 표현의 경우에,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음악보다 관심이 적은데, 그러나 회중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음악 못지 않게 크다. 예배실 안에 있는 커튼, 십자가, 강대의 카펫, 예 배실 벽면의 플랭카드, 방석등의 색깔을 미적인 조화를 가지 도록 연구검토한다. 부적절하고 자극적인 색깔들은 음악에 있어서 불협화음처럼 거슬리고 예배자의 마음과 정신을 산만 하게 한다.
매우 혁신적으로 생각되는 드라마나 무용의 경우, 성경봉 독을 입체낭독이나 간단한 드라마형식으로 대신할 수 있고, 설교 전이나 후에 잘 준비된 연극을 행할 수 있겠다. 예배시 작을 입례행렬로 시작하는 교회에서는 예전 무용단이 그 행 렬에 참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참여는 예배의 각 요 소의 의미를 강화시켜줄 것이다.
2) 과학 문화
예배에서 컴퓨터의 사용에 대해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영상스크린의 활용과 직접 연결된다. 기존의 환등기 뿐 아니라 최신의 멀티비젼시스템도 결국 영상스크린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로 귀결된다.
1) 예배 전에 예배준비를 위한 공지사항 또는 예배에 대한 사전 지식.
2) 찬송 부를 때 찬송의 가사.
3) 설 교시에 설교의 대지나 성경구절
4) 성찬 없는 주일예배 시에 성찬의 장면들을 제시.
5) 광고나 중보기도 내용소개.
6) 중보기도를 위한 자료(세계교회, 선교지모습)
3) 정신 문화
주일예배 중에서 청년주일 이나 어린이주일, 남선교회주 일, 여선교회주일등을 활용하여 각 세대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문화를 담은 예배를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 주일의 경우 어린이의 문화를 반영한 예배실 분위기, 안내위원들의 복장도 밝은 색상으로 하고, 찬송과 설교 중에 영상을 활용하 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청년주일의 경우, 청년들로 하여금 안 내를 맡게 하고, 성서봉독을 청년들로 하여금 입체낭독이나 드라마형식으로 낭독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장년들에게는 낯설지만, 청년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매우 호소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7. 현대적 문화의 적극적 수용과 예배의 본질 유지의 과제 를 위한 지침
현대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다음의 요소들이 더욱 강조가 되어야한다. 만일 현대문화를 수용할 때 다음 요소들이 약화된다면, 그 예배는 교회전통의 아름다운 유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첫째는 과거성도와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인 성도들은 과거 성도와도 한 몸이 됨을 확인하게 되는 것 은 예배의 현장에서이다. 과거 성도와의 연합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예복과 교회력을 충실히 따르면서, 현대문화를 수용해 야 한다. 또한 최근 불려지는 복음송의 무분별한 도입 때문 에, 과거성도들로부터 불려져왔던 찬송가를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과거 성도들의 기도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는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대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연령과 이해에 따른 소그룹화현상이다. 자연히 과거의 대가족제도 같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더구나 교회의 대형화에 따라서 소그룹화가 교회의 역동성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 나,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신앙의 가치들은 소그룹화된 공동체 보다는 연령과 이해와 관심을 초월한 더 큰 공동체적 예배에 서 확인되고 전달된다.
셋째는 전통적 말씀형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사학의 변화나 컴퓨터의 발달로 기존의 일방적 말씀의 전달방식과는 다른 전달방식들이- 예를들면, 사이버교회의 설교청취- 요청 되고 있지만, 현재의 설교와 성찬을 통한 말씀의 전달이 약화 되거나 변형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시대와 문화가 변화해도 변할 수 없는 예배의 두 축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이 더욱 효과적일 수는 있으나, 본질적인 것이 변할 염려가 있기 때문 이다.
(The Use and Limitation of the Contemporary Cultural Medium in Worship)
김 세 광(예배와 설교·조교수)
1.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수용에 대한 시대적 요청
2. 예배와 관련된 현대문화매체의 특징과 다양한 형식
3.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의 정당성
4. 예배에서 현대문화 표현의 역할
5. 현대문화의 위험요소들
6. 실천적 방안.
7. 현대적 문화의 적극적 수용과 예배의 본질 유지의 과제를 위한 지침
그동안 현대문화를 예배에 수용하는 문제는 1970년대에 는 주로 대학 채플이나 젊은이를 대상으로한 교회나 선교단 체등에서 실험예배의 성격으로 다루어왔는데, 1980년대에 들 어오면서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와 경 배와 찬양(Worship & Praise)식의 CCM사역, 그리고 윌로우 크릭 커뮤니티(willow Creek Community Church)나 새들백 교회(Saddleback Valley Community Church)등 현대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급격한 성장을 이룬 현대 교회들의 등장 으로 본격적으로 이슈화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에 영향을 받 은 온누리 교회나 사랑의 교회등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 하였는데, 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점차 한국교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다음은 통합측 장로교회의 21세기 교단발전 을 위한 정책 제안서에서 예배에서 현대문화의 적극적인 수 용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예배에서는 찬송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므로 찬송의 발전적 개발과 보급이 필요하며 드라마나 멀티 비젼의 사용등 새로운 예배 의식의 개발이 필 요하다. 21세기 교회는 균형있는 교회 음악을 활 성화시키므로써 급변하는 현대 문화 휩쓸리고 있는 성도들을 바른 찬송 생활에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삶에 지치고 고통으로 찌들린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활력적인 찬양을 통해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고 일 주일 내내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내고 하나님의 임재를 감격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찬송가가 많이 작곡되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흥겨운 우리 민 족의 전통 가락의 과감한 도입이나 신세대 젊은이 들이 흥미를 가질 빠른 템포의 현대적 음악 기법도 찬송가 작곡에 신중하게 선별되어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드라마 예배라든지, 다중 영상 매 체라든지 멀티 비젼의 과감한 수용이라든지 현대인 에게 적합한 예배의식의 개혁 가능성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이들을 얼마나 효 율적으로 성경적으로 활용하여 교회 성장과 교회 성숙과 연결시키느냐이다. 참된 예배 생활의 회복 을 위해서 신 세대를 위한 새로운 예배의 틀도 모 색되어야 한다. 정보시대를 맞이하여 교회에 모이 지 않고 자기 집에 앉아서 예배하는 첨단 영상매체 들을 통한 교회(cyber church)의 예배가 머지 않아 등장하리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 이다. 그리고 21세기의 교회를 이끌고 갈 바로 다 음 세대만이 아니고 그 때의 젊은 세대들을 예상하 고 그들을 위한 예배의 틀도 연구 개발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고서는 최근 전세계적으로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가고 있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예배와 회중을 둘 러싼 현대문화의 현상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미래교회의 예 배를 위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위의 제 안서는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제안서의 과제를 발전시켜서 현대문화 시대를 사는 회중들이 드리는 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역할 과 한계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현대문화매체를 수 용하되 전통예배의 본질을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과제인데, 이 를 위해서 먼저 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필요성과 다양성, 그리고 정당성을 밝힐 필요가 있다.
1.예배에서 현대문화매체의 수용에 대한 시대적 요청
역사적으로 예배는 역할과 형식에 있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여 왔다. 예배의 변화는 서양 문명의 발전과 그 시대의 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초대교회의 카타콤 예배, 중세의 예배의 형식, 종교개혁의 예배 갱신, 청교도의 예배 모범, 오순절 교회의 예배의 모습들은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나 사상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예배가 변화되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앞장 서서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예배의 회중들의 관심과 요청이 더 큰 영향 을 미쳐왔다. 이런 관점에서 예배에서 문화매체의 사용에 대 한 이슈도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왜 예배에서 새로운 문화 매체를 사용해야할까?
첫째는 현대 사회가 새로운 문화적 형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대는 정보화시대, 영상문화시대, 또는 디지털시대라는 말들로 잘 설명될 수 있다. 활자가 발명되던 시대에는 인쇄물로, 라디오 시대에는 음성으로 하듯이 현 시 대의 산물인 멀티미디어를 예배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사용하 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경영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시대 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21세기에 승리할 수 있는 기업의 조건에 대해 소니 사 장인 이데이 노부유키는 패러다임과 장이 바뀌었는데도 과거 의 성공체험에 안주해 과거 방식을 고수하면 결과는 실패뿐 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성공경험을 완전히 포기하고 구조 자 체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이런 대변혁기엔 과거식 구 조를 해체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진공관 TV의 최강자는 도시바였는데, 트랜지스터 시대로 바뀌자 도시바는 밀려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진공관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조직과 모델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날로그 에서 디지털로 모델 자체가 바뀐 지금은 50년간 누적된 낡은 시스템으론 대응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하면서, 그의 임무는 소니의 낡은 구조를 파괴해 네트워크 시대에 맞는 새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한다. 비록 경영방식을 말하는 것이지 만, 이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의 필요 성을 강조하는 점에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예배의 역사를 보 아도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안동교회 유경재목사는 멀티미디어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 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시 글자 속에 갇히게 되면 서 교회는 다시 형식화되고 제도화되고 교리화되어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과 생동감을 잃었다고 개탄하고 있는데, 따라서 예배도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찬양에도 영감이 없고, 기 도도 허공을 치고 있면서, 영성을 깨우기는커녕 회중의 감성 조차 자극하지 못하는 맥빠진 예배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 판한다. 그의 대안은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이하면서 멀티미 디어적인 교회로 거듭남으로서 초대교회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멀티미디어가 하나님께서 회중의 영성 을 일깨우시기 위하여 주신 도구라고 확신하면서, 영감있는 다양한 예배와 찬양과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의 주장이 멀티미디어에 대한 위험성을 의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무리하게 들릴 수 있으나, 회중의 수동적이 고 형식적인 자세를 탈피하고 적극적인 이해와 참여를 위한 제안으로서는 설득력이 있다.
둘째는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문화적 행동을 하기를 원하는데, 신세대 회중들에게 현대문화매체는 필수 적인 수단이며, 이러한 매체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창조하 고 싶어한다. 예를들면, 멀티미디어 예배의 경우, 40대 이상 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럽게 들릴 수도 있으나, 연령 층이 낮을 수록 더욱 친근하고 신선한 주제가 된다. 요즈음 신세대의 빠른 변화를 그들의 독특한 별칭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예를들 면 30대 80학번 60년대생을 뜻하는 386세대, 미국의 구분이지 만 46년에서 65년까지의 베이비붐세대, 66년에서 76년까지의 X세대, 77년에서 Y세대로 나눈다. 각 세대마다 특징이 있는 데, 386세대의 경우는 문학을 영상언어로 바꾼 세대이다. 이들 세대의 문학도들은 영화 시나리오 작가든 방송작가든 글로써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면 무엇이든지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도 문학적 상상력을 담아내는 창작장르로 보고 접근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이런 변화는 뚜렷해지는데, 따라서 X세 대와 Y세대는 영상세대 또는 디지털세대라고 불린다. 신세 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기성세대와 크게 구별되는 점은 기성세대들이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수 용하는데 익숙한 반면, 이들은 각자가 이미지를 창조하고 싶 어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예배에서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 찬송을 할 때도 온 몸을 사용하는 것을 더욱 자연 스럽게 느끼고, 광고도 음성이 아니라, 영상을 통한 광고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 신앙의 표현을 드라마나 어떤 몸짓으 로 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세대이다.
2. 예배와 관련된 현대문화매체의 특징과 다양한 형식
오늘날 현대문화의 이슈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 포 함하고 있는데, 즉, 신념, 행동양식, 언어, 특정시대나 특정 그 룹의 삶의 방식, 관습, 예식, 예술, 발명품, 과학, 전통, 사회의 지적이나 예술적 업적등이다. 이들 현대문화매체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로 빠른 확산성이다. 이는 신문, 잡지, TV, 영화와 같은 매스미디어의 급격한 발달 때문인데, 여기 에 여가시간이 증가와 더불어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가 많아 진 것도 그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의 문 화가 형성되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둘째는 문화 주체자들의 소그룹화이다 종전에는 문화를 비 교적 시대적 구분으로나 광범위한 지역단위로 구분했으나, 이 제는 시기나 지역의 범위가 점점 작은 단위로 축소되어 구분 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구분 정도였으나, 이제는 신세대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x세대, y 세대, 386세대, 서태지세대등으로 구분한다. 셋째는 다양성 과 포괄성이다. 이러한 현대문화는 개성을 중시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시대적 정신의 토양에서 맺어진 열매이다. 예배에서 현대문화를 적용하려고 할 때 예전처럼 더 이상 '시 청각'이라는 말로 구분하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따라서 현대문화를 예배에 수용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효과적 으로 하기 위해서 현대문화를 예술 문화, 과학 문화, 정신 문 화로 분류하여 다루는 것이 좋겠다.
1) 예술 문화
예술 문화의 분야로는 음악, 미술, 연극, 문학, 조각, 무용 등이 있겠는데, 이들은 내부적으로 각각 전통예술과 대중예술 이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에 음악의 경우, 최근 한국개신교예배의 이슈로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의 대립 과 조화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대부분의 기성교회들은 주일 예배에서 서구교회에서 소개한 찬송가와 서양고전음악을 바 탕으로한 성가곡을 예배찬송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서, 최 근에 설립된 교회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을 바탕으로한 복음송 또는 CCM이 사용되는데, 기성교회에도 청년대상 예배에서 거의 주된 찬송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때의 논의들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간의 토론에서 볼 수 있는 내 용들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는데, 대중문화(mass culture), 인 기문화(popular culture), 취향문화(taste culture)등으로 분류 될 수 있는 복음송에 관한 이슈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복 음송 또는 CCM을 예배찬송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사용한 다면 어디까지 수용하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 복음송가수가 예배인도자인가? '경배와 찬양'식의 예배가 과연 대안 예배 가 될 수 있는가? CCM Concert와 예배의 차이는 무엇인 가? 등이다.
2) 과학 문화
과학적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신문, 잡지, 영화, 비디오, 멀티비젼, 컴퓨터 등이 여기 속한다. 이 시대를 멀티미디어 시대, 디지털시대, 영상시대등으로 부르는데, 이는 이 과학적 문화가 현대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멀티미디어시대에서의 예배에 대한 논의마다 이 과학 문화들이 가장 활발하게 등장한다. 여기서 멀티미디어란 각 각의 매체들을 하나로 묶어 효과를 극대화시킨 시스템으로 컴퓨터를 주로 말한다. 따라서 멀티미디어 예배란 예배에서 컴퓨터의 테크놀로지는 물론, 영상비디오와 같은 현대의 미디 어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강대 위에 대형 스크린을 걸고 복음송 가사를 비추든지, 영상물을 보여주는 교회가 점차 증 가하고 있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위시해서 몇 몇 대형교회 가 지역마다 교회를 세워 OO성전이라고 부르면서, 본 교회 설교를 지역성전의 대형스크린에 동시에 생중계하는 것도 현 대문화적 현상 중의 하나다. 컴퓨터의 급격한 성장으로 컴퓨 터상에서만 존재하는 사이버교회(cyber church)의 출현을 기 정사실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교회에서는 전자화폐로 헌 금하고, 마음에 맞는 목회자의 설교도 시간을 초월해서 선택 할 수 있는데, 이 교회의 특징은 초시간성과 초공간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분명히 예배의 전통과 본질을 위협하는 것들 이지만, 현대문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3) 정신 문화
현대문화는 철학사조 또는 문학 사조등의 문화적 유행으 로 볼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환경에서 나타났 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로 보면 예배의 회중은 포스트모더 니즘의 정신의 수용여부를 떠나 포스트모던인이다. 예배에 서 창조(creation), 현존(presence), 총체화(totalization), 종합 (synthesis), 형식(form)대신 파괴(decreation), 부재(absence), 해체(deconstruction), 대립(antithesis), 반형식(antiform)등에 관심을 갖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다. 더구나, 이 사상은 진리의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정하고, 모든 현실을 가상현실화하고, 신지식을 담은 언어를 해체하려 고 하기 때문에, 예배의 본질을 유지할 수 없다. 예술에 대 한 것도 영속적인 것보다 유행을 의식하고, 미학적인 것에 있 어서 도덕적이나 철학적인 것보다 정치적인 것, 즉 풍자와 분 노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사상이 끊임없이 예배의 회중 의 사고와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x세대, y 세대, 386세대등의 이외에도, 90년대의 서태지세대가 형성되는 것도 배경에는 이런 사상 적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통신세대, 디지털세대 로 불리는 Y세대가 미국의 강력한 소비층으로 등장했다는 뉴 스가 등장했는데, Business week의 최근 Y세대 특집에서 기 존의 스포츠 상표인 나이키, 리바이스등이 Y세대의 취향을 맞추지 못해 곤경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공산 진영붕괴 후 미국의 패권, 경기호황의 상황에서 자란 이들의 특징은 미디 어, 케이블 TV, 전문잡지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지와 유명인을 쓴 광고를 선호한 부모 세대와는 달리 유머 와 아이러니, 직설적인 표현이 담긴 광고에 반응한다는 것이 다. 이러한 세대들이 그들의 예배에서 자기들의 관심을 어 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믿음의 응답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 해서 주의 깊게 관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3.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의 정당성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의 정당성은 무엇보다 예배가 그 당시의 문화와 어느 정도라도 궤를 같이해 갈 때, 예배의 본질을 더 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관찰을 들 수 있다. 문화의 과정을 세속화로 이해하는 고가르텐의 말을 사용한다 면, 예배는 세속화될 때, 기독교신앙이 고착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어느 정도 세속화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과제가 남기는 하지만, 예배가 문화와 함께 가야하는 것은 분 명한 것이다.
그런데, 예배에서 현대문화적 표현을 꺼리는 교회도 많은 데, 이는 그들 중 대부분이 반문화적이고, 반예술적인 성서이 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나 예술에 대한 성서의 이해 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들이 있겠으나, 성서가 예배에 지역 문화나 예술을 거부하고 있다는 주장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수많은 문화와 예술적 표현들을 무시하는 반성서적 주장에 불과하다. 프랭키 쉐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반문 화적이고 반예술적인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두가지로 분석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상생활과 분리된 영성, 즉 영성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아니라 스스로가 목적 이 되어 삶과 분리가 되므로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분 리가 일어나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용주의적 관점으로 자연세계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속성, 재능, 노력 마저도 실용성에 따라 판단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화나 예술은 처음에는 영적이지 못하다는 편견 때문에 교 회의 지하실에 던져졌다가, 겨우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지 만, 교회의 실용주의적 입장에 따라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 자 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창조성을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성서에서는 예술을 중요한 예배의 요소로 여 겼을까? 첫째, 예술의 창조적 성격과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때문이다. 창조성과 예술적 가치야 말로 천지창조의 기록부 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창조적 재능이나 문화적 노력,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하나님 과 다른 사람의 창조성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등을 영적 으로나 신학적으로 정당화 시킬 필요가 없으며 그것들은 인 간이라는 존재처럼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라고 역설하는 프랭키 쉐퍼의 호소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둘째, 신앙자체의 성격이 초자연적인 개념을 가시적 영상과 상징으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한다. 어떤 유한한 언어로도 초 자연적인 진리를 완전히, 그리고 충분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 에, 교회는 항상 어떤 예술적 형식에 의존해 왔다. 엘리아데 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것을 확인해준다.
어떤 종교적 상징물들은 예술적 표현이라는 매개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는 종교적 상징물의 속성은 가 시적인 형태를 빌려야 비로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성스러운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수단으로 하여 불가시적인 것을 재현해 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예술로 표현된 것은 그 가치관을 더 강화한다. 프란시 스 쉐퍼가 이것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는 푸줏간에 걸려 있는 한 덩어리의 고기는 단지 매달려 있을 뿐이지만, 렘브란트의 작품 "푸줏간에 매달린 쇠고기"를 보면 많은 것 을 생각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예배의 공간을 꾸미는 상 징들, 예배에서의 찬송이나 설교의 언어도 예술적 표현을 통 해서 그 의미가 강화되는 것이다.
4. 예배에서 현대문화 표현의 역할
1) 커뮤니케이션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과제는 현대의 세계 속에 그리스 도를 전달하는 것인데, 현대문화매체들이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 는 현대라는 이 세계 속에 전달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의 이미 지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있다. 너무 신격화된 그리스도 의 실존 개념이어서도, 또는 단순한 인간 예수여서도 안된다. 회중의 고유의 문화적 사고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신약시대에 복음이 다양한 문화권에 전달되는 과정을 관찰하 면 기독교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현대문화 매체가 참된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예배에 크게 두가지 공헌을 한다. 첫째, 예배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다. 기독교적 커뮤 니케이션은 배타적이고 일방적인 것을 지양하고-이 점에서 매스 미디어와 구별된다- 개방성과 포용력으로 예배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따라서, 현대문화매체 속에 있는 공동 체의 결속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주의와 편견들을 경계하 고, 성별, 사회적 계급, 지역감정등을 초월한다면, 예배 안에 서 발생할 수 있는 분열과 소외, 고립, 장애물들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회중의 참여를 도와준다. 현대문화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구조에서 나오는 일방향성보다는 쌍방향 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회중이 예배에 능동적으 로 참여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능동적 참여는 회중 각 자의 달란트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사명을 갖게 해주고, 예배 에 풍요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2) 의미의 전달방식으로서 상징(symbol)
예배의 중요한 세 단어로 의미(meaning), 상징(symbol), 신비(mystery)를 말한다면, 예배는 신비와의 만남을 통해서 회중의 삶에 의미를 주었는데, 이 만남은 상징 또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상징의 중 요성을 강조한 말로서, 결국 예배에서 예술의 중심적 역할을 나타낸 것이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종교의 상징물의 속성은 가시적인 형태를 빌려야 하기 때문에 예술적 표현이라는 매 개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다시말하면, 성스런 예술은 가시 적인 것을 수단으로 하여 불가시적인 것을 재현해 낸다. 하젤틴이 예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예술은 자유의 길을 제시해 주며 회복시켜 주며 종교의 상투적인 말 안에서 너무 오랫동안 감금된 진리와의 계약을 새롭게 하는데, 낡은 것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것을 신성하게 하는 위대하고도 찬 란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때는 이런 예술의 상징성을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을 다시 들어보 자.
성스런 예술은 종교경험과 세계 및 인간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구체적인 형태로 재현한다. 그런 데 이런 전이가 전적으로 인간의 작업으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왜냐면 거기에는 신격이 스스로를 인간에 게 드러내어 형태나 형상으로 지각될 수 있도록 함으 로써 함께 참여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따라서, 예술 에 나타나는 모든 종교적 표현은 인간과 신의 만남을 보여준다.
3) 상상력과 창조성.
예배 회중의 상상력과 창조성은 예배를 풍요롭게 해주 는 요소들이다. 상상력은 회중들로 하여금 예배의 차원을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끌어 가게하고, 그리스도와 의 만남도 실감있게 하고, 세계에 대한 사명감도 고취시킨다. 창조성은 회중들로하여금 조물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임을 확인케해주고, 예배의 아름다움을 유지시켜준 다. 현대문화매체들은 회중들의 상상력과 창조성 강화시켜 줄 수 있다. 현대문화 속의 과학적 탐구나 예술적 노력은 상상력과 창조성과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는 모든 창조적 정신에 필수적인 정신적 균형은 과학적 탐구 와 문학적 상상력 사이의 끊임없는 교류에 의해 유지되어왔 음을 확신한다.
5. 현대문화의 위험요소들
예배에서 현대문화의 수용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모든 문 화가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현대 문화에는 예배에 해 를 끼치는 요소들이 많이 있으므로,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문화에 대하여 경계해야할 것으로는 문화적 저급 성, 개인주의, 소비주의, 세속적인 악의 개념등이다.
첫째, 문화적 저급성을 경계해야한다.
저급한 문화는 예배의 가장 큰 방해꾼이다. 왜냐하면, 저급한 문화는 회중들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최 선을 다해 사용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과 하 나님의 선물들이 저급한 문화로 표현될 때, 하나님에 대한 아 름다움의 이미지가 파괴되므로,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저급한 문화를 정확히 규정짓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대개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결여된 예술과 인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결여된 문화가 보여주는 특 징들이 있는데, 조잡함, 무질서, 부조화. 모방성, 서투름등이 다. 이런 것들은 역동성이나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예배인도자들 중에는 예배를 역동적으로나 자연스럽게 이끌 기 위해서 이러한 저급한 문화들도 그대로 수용하는데, 이는 창조성과 아름다움이 담긴 문화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예배인도자의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오히려 사치스럽고, 비본 질적인 것들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 싶다. 그럼에도 저급 한 문화를 정당화시켜주는 배경에는 실용주의가 있음을 알아 야 한다. 실용주의는 절약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조잡함, 부 조화, 모방과 서투름을 합리화시켜주며, 하나님께서 주신 재 능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실용주의에 뿌리를 둔 예배자는 예 배에서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부차적이고 사치스럽게 생각되 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예술이나 매스미디어 등 현대문화매체들은 교회성장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예배 실도 아름다움보다는 보험회사나 자동차회사의 사무실처럼 전도목표나 실적을 전광판으로 표시하여 회중들에게 전도사 명을 각성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플랭카드의 색감의 미적 조화나 창의성 있는 언어에 대해서는 논의할 여유조차 없는 분위기라면, 현대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더욱 위험스럽 다. 왜냐하면, 모든 문화를 도구로만 보고 수용하되, 조잡하 고, 모방하며, 무질서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최근, 복음송이 나 소위 열린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준비나 연구 없이 이웃 교회의 모습만을 모방하려는 시도들도 이런 위험에 빠질 가 능성은 매우 많은 것이다.
둘째, 개인주의를 경계해야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 중의 하나가 다원성이라는 환경 안에서 개인의 개성의 인정과 개인 즐거움과 자유를 강조하 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문화형성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과거 의 문화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한 것이 사실이다. 예배회중 은 각자의 믿음 표현에 있어서도 각자가 느끼는 대로, 과감히 표현하고 싶어하는데, 예를 들면 찬송을 부를 때 주위의 시선 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들든지, 일어서서 손을 흔들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년예배에서 영상물을 제작하여 광고를 할 때도 제작자의 특별한 시각으로 편집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적극적인 예배참여와 자발적인 믿음표현이라는 면에서 기존 전통적인 예배에 신선한 도전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믿음의 표현을 개인의 감정과 느낌에 전적으로 의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이다. 공동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공동체의 믿음표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록 느낌이나 감정이 없어도 의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동예배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것은 예배가 공연장처럼 관람하면서 감동 받으려는 분위기이다. 내가 감동 받아야 은혜스럽고 참된 예배이지 그렇지 않으면 형식적인 예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큰 문제다. 현대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개인의 감동을 창출하고 효과 있게 하 려는 것이라면, 크게 우려해야할 일이다. 이러한 위험을 막 기 위해서는 회중 전체가 공감하고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참 여할 수 있도록, 현대문화의 수용은 약간은 보수적으로 움직 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 소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현대문화의 창조성과 예술성이 소비주의를 합리화해서는 안된다. 비쌀수록 아름답다거나, 많이 투자해야 창조적인 것 이 나온다던가하는 논리에 빠져서는 안된다. 위에서 지적한 서툴거나 조잡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물질과 전문가가 있어 야 한다는 확신도 위험하다. 창조성이나 예술성이 귀족들만 의 소유는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오히려 창조성과 아름다움은 일반 서민층으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경계하는 것은 물질을 우상하고 탐욕을 조장하는 소비주의에 대한 것 이다. 물질만능, 소비지상주의는 하나님의 대적자이며, 예배 의 방해꾼이기 때문이다. 예배복장으로 깨끗하고 조화되는 옷을 준비하기 위해서 비싸고, 화려한 옷을 사야할 필요는 없 는 것이다. 예배실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서 순금과 옥으 로 치장할 필요는 없다. 문화를 실용적 입장에서만 보는 실 용주의를 경계해야하는 것처럼,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치와 향 락을 정당화하려는 소비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넷째, 세속주의화된 악의 개념을 경계해야한다.
예배자들이 가장 혼돈하기 쉬운 부분이 문화라는 이름으 로 가장한 악의 모습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주의 자들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부부, 가족에 대한 신개념이나 혼전 섹스등은 현대문화라고 해서 수용할 수 없는 개념들이 다. 또한, 컴퓨터의 발달로 이야기되는 사이버교회(cyber church)도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혹자는 사이버교회가 공동 체에 대한 신개념이라고 예언적으로 설명하지만, 끝까지 거부 해야할 악의 개념이다. 시공을 초월한 주님의 몸으로서의 공 동체로 생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현 재 함께 하는 공동체가 없는 성도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공동 체가 있을 수 없다. 또한, 사이버교회가 장점으로 세우는 무 시간성이야말로 공동예배를 시간성의 중요함을 상실한 것이 다. 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듣고 싶을 때 꺼내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자리에서 들을 때 이해되고 살아있 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찬 또한 함께 한자리에 서 나눌 때 비로소 주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의식할 수 있는 것이다.
6. 실천적 방안
예배에서 현대문화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좋은 가에 대 해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문화에 대한 지역교회의 이해 와 관심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에 소개되는 것들도 교회에 따라 무리한 것들이 있겠는데, 이것을 소화하지 못하 는 교회라고 해서 문화적으로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해서는 안된다. 현대문화를 수용해야만 더욱 활력있는 예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들은 아직은 혁신적인 분위기를 수용할 수 있는 교회에 한정될 것이며, 모든 교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 것이 다. 대부분의 교회는 아직도 현대문화의 수용을 꺼리고 있거 나,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는 전통예배에서 현대 문화들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를 그 가능 성을 생각해보려는 것이다.
1) 예술 문화.
음악, 드라마, 미술, 무용등의 예술적 표현들로 예배의 각 요소들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다. 음악의 경우에, 최근에 활 발히 논의되고 있는 복음송의 주일예배 수용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많은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복음송 중에서 예배송으로 적합하고, 회중 에게 잘 알려진 노래를 선곡하여, 먼저는 헌금송이나 성가대 합창등으로 소개하고, 예배의 찬송으로 도입할 수 있겠다. 중보기도후나 성도의 교제시에 사랑과 기쁨과 간구를 주제로 한 복음송을 함께 부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미술적 표현의 경우에,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음악보다 관심이 적은데, 그러나 회중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음악 못지 않게 크다. 예배실 안에 있는 커튼, 십자가, 강대의 카펫, 예 배실 벽면의 플랭카드, 방석등의 색깔을 미적인 조화를 가지 도록 연구검토한다. 부적절하고 자극적인 색깔들은 음악에 있어서 불협화음처럼 거슬리고 예배자의 마음과 정신을 산만 하게 한다.
매우 혁신적으로 생각되는 드라마나 무용의 경우, 성경봉 독을 입체낭독이나 간단한 드라마형식으로 대신할 수 있고, 설교 전이나 후에 잘 준비된 연극을 행할 수 있겠다. 예배시 작을 입례행렬로 시작하는 교회에서는 예전 무용단이 그 행 렬에 참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형태의 참여는 예배의 각 요 소의 의미를 강화시켜줄 것이다.
2) 과학 문화
예배에서 컴퓨터의 사용에 대해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영상스크린의 활용과 직접 연결된다. 기존의 환등기 뿐 아니라 최신의 멀티비젼시스템도 결국 영상스크린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로 귀결된다.
1) 예배 전에 예배준비를 위한 공지사항 또는 예배에 대한 사전 지식.
2) 찬송 부를 때 찬송의 가사.
3) 설 교시에 설교의 대지나 성경구절
4) 성찬 없는 주일예배 시에 성찬의 장면들을 제시.
5) 광고나 중보기도 내용소개.
6) 중보기도를 위한 자료(세계교회, 선교지모습)
3) 정신 문화
주일예배 중에서 청년주일 이나 어린이주일, 남선교회주 일, 여선교회주일등을 활용하여 각 세대가 표현하고 싶어하는 문화를 담은 예배를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린이 주일의 경우 어린이의 문화를 반영한 예배실 분위기, 안내위원들의 복장도 밝은 색상으로 하고, 찬송과 설교 중에 영상을 활용하 면 더욱 좋을 것이다. 청년주일의 경우, 청년들로 하여금 안 내를 맡게 하고, 성서봉독을 청년들로 하여금 입체낭독이나 드라마형식으로 낭독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장년들에게는 낯설지만, 청년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매우 호소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7. 현대적 문화의 적극적 수용과 예배의 본질 유지의 과제 를 위한 지침
현대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다음의 요소들이 더욱 강조가 되어야한다. 만일 현대문화를 수용할 때 다음 요소들이 약화된다면, 그 예배는 교회전통의 아름다운 유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첫째는 과거성도와의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인 성도들은 과거 성도와도 한 몸이 됨을 확인하게 되는 것 은 예배의 현장에서이다. 과거 성도와의 연합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예복과 교회력을 충실히 따르면서, 현대문화를 수용해 야 한다. 또한 최근 불려지는 복음송의 무분별한 도입 때문 에, 과거성도들로부터 불려져왔던 찬송가를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과거 성도들의 기도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둘째는 공동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현대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가 연령과 이해에 따른 소그룹화현상이다. 자연히 과거의 대가족제도 같은 공동체가 유지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더구나 교회의 대형화에 따라서 소그룹화가 교회의 역동성 유지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 나,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신앙의 가치들은 소그룹화된 공동체 보다는 연령과 이해와 관심을 초월한 더 큰 공동체적 예배에 서 확인되고 전달된다.
셋째는 전통적 말씀형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수사학의 변화나 컴퓨터의 발달로 기존의 일방적 말씀의 전달방식과는 다른 전달방식들이- 예를들면, 사이버교회의 설교청취- 요청 되고 있지만, 현재의 설교와 성찬을 통한 말씀의 전달이 약화 되거나 변형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시대와 문화가 변화해도 변할 수 없는 예배의 두 축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이 더욱 효과적일 수는 있으나, 본질적인 것이 변할 염려가 있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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