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히는 농아인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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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히는 농아인의 인권

1998년 12월 9일에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하여 장애인 인권 헌장이 발표되었다. 사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기에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인권 헌장이 발표된 것은 역설적으로 말해서 한국의 장애인 인권 상황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농아인들의 인권문제는 어떤가?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과거에 비해 유례없이 훨씬 민주화되고 현대화된 오늘날에도 아직 우리나라 농아인들의 인권은 많은 부분 답보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농아인들의 기본적 인권 중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권리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을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더러 제6조는 "법률 앞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아인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멸시받고 있다. 아직도 농아인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가능하면 지구상에서 완전히 도태되기를 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 한 예를 농아인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인 농아학교 이름에 '농아'라는 단어가 삭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교육부에서는 1988년에 언어 순화라는 미명하에 일반인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이름을 삭제하고 다른 좋은 이름으로 교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서울농아학교'는 '서울선희학교'로 개명이 되는 등 전국 모든 농아학교 이름에 '농아'라는 단어가 삭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아'라는 이름이 삭제된 것은 농아인의 존재를 무시하고 부정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외국 어느나라에 농아학교 이름에 '농아'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많은 동문들은 제2의 창씨개명으로 인식될 만큼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아인도 엄연한 인간인 이상 그 인격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또한 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앞장서서 이해하고 옹호해야 할 교육부에서 어처구니없게 많은 농아인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아직 임상학적으로 그 효율이 완전히 입증되지 못한 인공와우이식수술이 농아 어린이들을 상대로 자행되고 있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농아인을 실험용 동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둘째, 고유한 언어를 가질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는 언어가 다르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농아인의 언어인 수어(手語)도 예외가 아니다. 농아인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적합한 언어는 음성언어가 아닌 시각을 통해서 의미를 판독할 수 있게 하는 수동적(手動的) 언어라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나 농교육자들은 농아 어린이들에게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구화 방식을 강요함으로 그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수어의 탄압이 농아인의 교육, 고용, 그리고 일반 사회에의 완전한 통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농아인의 일상 생활에 엄청난 제약을 가져준다는 점을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공 편의 써비스를 받을 권리이다. 제25조는 의료 보호와 기타 공공 편의 써비스를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농아인들은 병원이나 법원 같은데서 수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의사나 변호사나 기타 전문가를 확보하지 못함으로 공공 써비스 혜택에서 제외되는 불이익을 겪고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수어 통역 써비스가 필수적인데 작년까지는 수어통역 써비스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아서 사회에의 완전한 통합에 걸림돌으로 작용했다. 정부에서 수어통역 센터 운영을 위한 예산을 올해에야 처음으로 편성함으로 농아 권익 신장에 성의를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질있는 수어통역사를 다량 확보할 수 있도록 수어통역사 양성에 재정적 지원을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일할 권리이다. 제23조는 누구나 일할 권리와 직업 선택의 자유 그리고 유리한 근로 환경과 차별대우의 금지를 보장하고 있다. 농아인들의 수준 낮은 교육이 보다 나은 직업을 구하는데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농교육의 질적 개선 및 향상이 절실히 요구되어진다. 대부분의 농아인들은 3D 직종에 속하는 체력을 소모시키는 단순 노동에 종사하고 있지만 고급 직종에는 거의 문호가 닫혀 있다시피 하여 하나의 차별적 사례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농아인들은 청각장애를 이유로 건청인만큼 원하는 직종을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농아인과는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곳에서 고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결국 농아인들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세한 삶을 강요당하게 되어 사람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농아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농아인들을 위한 직업 여건의 개선인 것이다.

다섯째, 정보 접근의 권리이다. 농아인은 그 장애의 성격상 불가피하게 정보 입수나 접근에 애로를 느끼게 된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대를 '정보화 시대'라고 규정하는데 무리가 없을 만큼 현대인들은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보는 곧 현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에 정보 소외 현상은 곧 삶의 질 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농아인들은 최소한 도의 정보접근권조차 도외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대신 팩스를 사용하는 것은 좋은데 상대방이 팩스를 갖고 있지 못하는 한 서로 통신이 두절될 수밖에 없다는 치명적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서 통신 릴레이 써비스를 마련해야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특히 농아인들이 TV를 의미있게 시청하기 위해서는 자막방송이 필수적인데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KBS 같은 국영 방송국에서 자막방송을 실시하지 않는 무성의를 드러내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 MBC에서 실험적으로 자막 방송을 보내고 있지만 자막방송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자막수신기(caption decoder)가 추가로 구비되어야 하는데 LG, 삼성, 대우 같은 가전제품 회사에서는 내장형 자막수신기가 달린 TV 수상기를 그것도 100만원 이상 하는 고가 29인치형에 한정시켜 생산함으로 영세한 농아인들이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횡포를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구랍 3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하여 장애인인권헌장을 발표했다. 그 헌장이 얼마만큼 법적 구속력을 발휘하게 되는지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 헌장 제4조에 정보이용에 필요한 통신, 수화통역, 자막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으니 TV 방송국들은 의당 농아인들이 방송 매체에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성실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이상 한국 농아인들이 겪고 있는 기본적 인권 침해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한국 농아인들은 일반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시민들의 의식이 날로 현대화되어 가고 있는데 왜 농아인의 인권은 상당부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일반인들의 농아인에 대한 의식에 문 제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농아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 상존한다. 예로부터 장애인 하면 무능하고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부정적인 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 팽배하였다. 농아인은 듣지 못하고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좋든 싫든 '장애인'이라는 딱지를 벗어나기 힘들다. 장애인은 정상인의 반대개념이기 때문에 장애를 입고 있는 농아인에게는 오명(stigma)이 붙어진다. 그것이 편견의 형태로 발전해서 장애인을 2등이나 3등 시민으로 취급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청각장애를 반드시 고쳐야 할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으로 보는 병리적 관점도 농아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고정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 농아인에 대한 가부장적 태도가 인권 침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다. 농아인은 약자이고 또한 의사소통에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농아인을 어린애 취급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멸시 천대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농아인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거나 도외시하기 일쑤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농아인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려는 건전한 자세가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일반 사회는 농아인에 대해서 여전히 가부장적인 태도를 견지함으로 농아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철없는 어린아이의 투정으로밖에 보지 않을 뿐 아니라 농아인의 의사나 결정권을 무시하거나 간섭 방해함으로 그 인권이 종종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선희학교에서 동창회에 사전의 양해나 설명이 없이 일방적으로 교명 개명을 단행한 것이 가부장적 태도의 좋은 예이다.

셋째, 농아인과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함으로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 농아인은 그 장애의 성격상 음성으로 진행되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류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은 물론이요 일반인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다. 일반인들은 말이 안 통하는 농아인에 대해서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이에 따라 사실에 기초하지 못한 왜곡된 편견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면서 갖가지 불필요한 오해들이 양산되었다. 그래서 농아인은 완고하다느니 충동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다느니 하면서 농아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 사회의 농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농아인의 인권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침해당하는 슬픈 사례가 도처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농아인들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그저 묵과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엄성이 침해되는 것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는 옛말처럼 지금까지 는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도 말을 못하니까 제대로 항의를 못하고 냉가슴을 앓아야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된다. 부당한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할 경우 농아인들은 응당 항의의 소리를 내야 한다. 언젠가 보다 나은 세상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저 참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된다. 농아인에게는 침묵하는 것이 역시 어울리는 미덕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농아인협회나 교회에 인권 침해 사례를 알려서 개인의 이름이 아닌 한국 35만 농아인들의 이름으로 강경하게 항의하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야 한다. 더 많은 농아인들이 억울한 사례를 호소하고 고발할 수 있도록 협회 안에 신문고 같은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장애인 관련법에 미비점이 발견될 경우 관련 당국에 보완을 요구하는 한편 일반인 사회에 우리의 억울한 인권 침해 사례들을 널리 홍보해서 관심과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는 농아와 관련된 서적이나 논문 그리고 기사들이 수천권이나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농아와 관련 서적이 열 손가락에 들 정도이다.

사실 농아인협회에서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전개해야 되는데 청음회관에서 독립되어 나온지 3년이 안된 탓인지 홍보활동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어 아쉬움을 남는다. 어쨋든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이하여 장애인 인권헌장이 제정 선언되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인권을 사수하려는 노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인권은 우리 스스로가 보호해야 한다. 타인이 보호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권을 찾아야 한다. 이제 장애인 인권 보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성립된 이상 우리는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어떠한 기도를 분쇄하고 감시함으로 일반 사회에서 더 이상 우리를 우습게 여기고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주해 목사/영락농아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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