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브레이드 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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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사도 바울은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것은 부모들이 고의적으로 혹은 부주의해서 불필요하게 자녀들의 화를 돋우는 일이 없도록 경계할 것을 부모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때로는 자녀들이 부모의 자극과는 상관없이 분노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아이의 이기심, 미성숙 또는 잘못된 마음 자세들이 분노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아이에게 죄가 있다. 그러나 부모가 아무 생각 없이 자녀들을 괴롭히거나, 의도적으로 화를 돋우거나 또는 부주의한 행동으로 자녀들의 분노가 생기게 될 때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면 부모는 죄를 지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죄를 짓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고 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들을 노엽게 만든다면 자녀들로 하여금 십계명중 다섯 번째 계명을 어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 부모는 하나님 앞에서 엡6장4절의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을 거역한 죄 뿐 아니라, 자녀들도 넘어지게 만드는 죄까지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파괴적인 죄이다.
자녀들의 화를 돋우거나 혹은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가정에 주시는 혜택들을 잃게 만든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녀에 대해서 적절한 사랑의 가르침과 훈계를 게을리 하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가정은 자녀들에게 아주 해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결국 비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 보다 주님의 일에 더 적대적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엡6장4절의 말씀을 무시하는 부모들은 그들이 뿌린 대로 거둘 것이며, 세속적인 가정들이 겪어야 하는 또는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노엽게 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파로르기조(Parorgizo)'는 ‘화를 내다’, ‘격노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빈정거리며 공개적으로 반항하는 모습을 묘사하거나,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불만과 소용돌이치는 은밀한 괴로움을 언급할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부모가 화를 돋우는 자녀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노여움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 평범한 것들을 살펴보자.


과잉보호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자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들을 숨 막히게 하면서 그들을 결코 믿지 않는다. 부모가 독립할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주지 않기에, 자녀들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부모는 분명히 자녀들을 보호해야 한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위험이 많은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녀들에게 많은 자유를 줄 수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잉보호 역시 위험을 안고 있다.

구약에 나오는 라반은 지배적이며 과보호적인 부모라 할 수 있다. 야곱이 둘째 딸인 라헬을 사랑했지만, 장녀인 레아를 먼저 야곱과 결혼 시키기 위해 속임수를 썼고, 야곱이 자기를 위해 7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과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다. 야곱이 떠날 때가 되었음에도 라반은 함께 살 것을 요구했다. 그의 과보호적인 자녀양육과 계속 되어진 자녀의 결혼생활에 대한 간섭은 딸들의 건전한 결혼생활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아버지 라반에 대하여 딸들의 평가를 살펴보자. 창31장14-15절에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업이나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 라반이 부모 자식 간의 소속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행동들이 자녀들에게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로 보여 졌다.
과잉보호로 자녀들을 숨 막히게 한 부모들은 종종 자신들이 자녀들의 최선의 유익을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런 과잉보호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아주 확실한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과잉보호는 자녀에 대한 신뢰의 부족을 보여준다.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는 자녀들은 부모의 신뢰를 얻는 일을 포기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특전이 주어지지 않는 규칙과 구속은 질식시키는 감옥이 된다. 그런 감금을 견딜 수 없어, 결국은 반항하는 자녀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성장하면서 배우고 실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자유와 독립이 필요하다. 부모가 설사 불안감을 느낄지라도 용기를 내서 허용해야 한다. 어느 정도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책임을 결코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녀들을 치마폭에 감싸기만 하는 어머니들에 대한 원망을 남모르게 키워가고 있을 뿐이다. 부모들은 그 원망이 예상치 못한 상황과 시기에 폭발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녀들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부모들은 엡6장4절이 금하는 자녀들의 노를 발하게 만들 것이다.

-열린편지/존 맥아더 / 하나님의 방식으로 자녀키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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