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독교 메시지의 요약, 롬 10:4 (마틴 로이드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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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기독교 메시지의 요약, 롬 10:4 (마틴 로이드존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이 영광스런 한 구절은
전체 기독교 메시지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저는 이 구절을
‘그리스도인의 대헌장’이라고 부르는 대담성을 보이고 싶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자유케 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유의 굴레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해방시킵니다.



1. 일반적인 진술


1) 율법의 요구의 심각성

먼저 우리는 유대인들의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율법과 그 율법의 요구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는
아주 옳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갖지 못한 그 율법이 자기들에게 주어진 사실을
크게 자랑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옳았습니다!
그 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구약에 있어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율법을 오해하였고
그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련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은 그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차원에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의라는 것은 가능치 않다는 것도
그들은 알 수 있었습니다.

설교자의 위대한 의무는
모든 사람들에게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의로운 요구의 차원에서 판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의 위대한 임무는 바로 그 점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비록 많은 죄를 짓지 않고 어떤 악행들에서 벗어났다 할지라도
어떤 특별한 죄의 차원에서 판단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의 의로운 차원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야고보가 상기시킨 바와 같이,
사람이 어떤 한 율법의 조항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
율법의 그 모든 조항에 대하여 실패한 사람이 됩니다(약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2:10)


2) 율법의 요구를 언급하지 않는 구원교리는 거짓임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의 차원에서 구원의 문제를 표현하지 않는 가르침은
어느 것이라도 거짓된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한 요점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거짓된 교훈에 많이 익숙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차원에서만 구원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만 말하고,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 할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식의 메시지를 증거합니다.
구원을 주는 것이 바로 그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 편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다 용서할 의향을 갖고 계시지만
사람들이 그 점을 인식하지 못해서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 따르면
구원을 설교하는 것은 바로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점만 인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그러한 가르침이 그릇될 뿐만 아니라
정말 비극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 가르침처럼 사람들을 오도하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가르침도 율법의 요구의 차원에서 진술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니라”
그와 같이 구원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키는 차원에 속한 것이 아니면
그릇된 것입니다.
구원에 관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키는 차원에서 말하지 않는
그 어떤 교훈이나 그 어떤 사상도
마귀에게 속한 거짓된 것으로 철저하게 배격되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성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바로 그 인격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우리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매우 분명해야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전체 문제 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리스도의 사역,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의 중차대한 본질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죄 용서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까?
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가 행하신 일의 절대적인 필연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면서
바로 그 때문에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복 받는 것을 크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많은 다른 것들을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기독교 복음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 없이 기독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없이 복음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된다.”는 이 구절을 오해하여
율법이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율법을 주셨으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율법은 마쳐졌다고 말합니다.
이제 율법은 더 이상 해당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또 한 가지의 심각한 오류입니다.
이 구절은 그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17-18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지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 말씀 자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대한 영구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어떠한 것을 기대하는지를 보여 주는 완벽한 표현입니다.
율법은 잠시적인 것이 아닌 영구한 것입니다.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표현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또한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오신 후에 율법이 폐하여졌다거나
더 이상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그 율법을 가지고 요구하십니다.
율법과 은혜를 서로 대치시키는 것만큼 큰 오류는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의하여 판단 받지 않는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판단 받을 뿐이다”
그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판단을 받습니다.
그 율법은 하나님의 판단의 영원한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 율법으로 판단 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진실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었다 할지라도
율법과 영원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여전히 지켜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율법은 여전히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유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목적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능히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금 더 낮은 수준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가르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율법은 이제 가버렸다. 이제 우리는 은혜 아래 있다.
우리가 은혜 아래 있으니 표준이 더 낮은 것이다.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다. 우리가 무엇을 행하든지 상관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한
도덕폐기론(Amtinomianism, 또는 반 율법주의)입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표준을 낮추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보여 줄 것입니다마는 주님께서 그런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기준은 남아 있습니다.
복음은 율법의 요구에 관해서 일을 더 쉽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요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적이고 영구한 성질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율법과 작별을 고했다는 의미에서 율법의 마침이 아닙니다.


2.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까?


산상설교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을 위해서 그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의미에서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그가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게 율법의 지식을 이행하셨다는 면에서
율법의 마침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의 차원에서 그 모든 것이 필요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모든 필요를 완성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1) 성육신

그는 “여자에게서 나심으로” 그 일을 이루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가 “율법아래 있게” 되셨습니다(갈4:4)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으로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성을 취하시고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율법아래 놓으셨습니다.
그 율법의 요구에 복종하셨습니다.
그의 성육신은 율법 성취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그가 인성을 취하지 아니하셨다면
그런 일을 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중 하나같이 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대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이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2) 세례 받으심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마3:15)
그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그분은 당신 자신을 우리와 같은 위치에 놓으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메시아와 구주로서 당신 자신의 일을 취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당신 자신을 우리와 함께 놓으시고 계셨습니다.
그는 율법 아래 계셨고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 모든 요점에 순응하셨습니다.


3) 율법을 순종하심

그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생활을 살아나가셨습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예수님께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조항을 다 만족시키셨습니다.
그는 그 어떠한 방면에서도 율법의 조항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이행하셨습니다.
율법의 그 모든 요구를
그의 적극적인 순종의 삶 속에서 만족 시키셨습니다.


4) 십자가 그는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는 단호한 자세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우리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직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 앞에서 죄를 범하였고 그 율법은 우리에게 형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하고 철저하게 이루기 위해서
우리 죄책에 대한 무엇인가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 율법이 선언하고 요구하는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율법에 따라서 죄책이 요구하였던 바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십자가상에 계신 그분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가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입니다.
그 율법의 궁극적인 요구를 다 이행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신 의미가 그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이 그러한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요구조항을 다 만족시키셨습니다.


‘로마서 강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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