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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사랑이 답이다

입력:2017.07.06 20:10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6월 19일 제천에서 좌회전하던 택시와 제천역 방면에서 오던 오토바이가 충돌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택시 밑으로 깔렸다. 누군가 사고났다는 소리를 쳤고, 순간 교통사고 현장 주위에서 이를 목격한 시민 10여명이 모여들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들은 달려들어 스스럼없이 택시를 들어올렸다. 무게 1t에 가까운 택시를. 119 구조대가 올 때까지 시민들은 간단한 응급처리를 했다. 환자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관심과 사랑의 힘을 엿볼 수 있고, 연합의 위력을 실감한 사건이다. 

어느 날 예수님이 가버나움 동네 어느 집에 들어가셔서 '도'를 전하고 계셨다(막 2:1). 그 동네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다. 뇌출혈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 희망의 불이 켜졌다. 구질구질한 인생에 주어진 '해답'이 있었다. 

'예수님'이야말로 중풍병자에게 희망이요 해답이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주셨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육체의 건강도 회복시켜 주셨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완전한 치유를 베풀어 주셨다. 

인생의 각종 문제를 갖고 예수님께 나왔던 사람들은 새로운 인생을 경험했다. 눈을 뜨고, 문둥병을 고쳤고,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고, 귀신들린 자가 고침을 받았다. 예수님이야말로 모든 인생의 희망이요 해답이니 그에게 나아가는 자가 행운을 잡는 셈이다.

 

아무리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오셔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 그런데 중풍병자 곁에는 '돕는 네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가족인지, 친구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여하튼 이들은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붕의 덮개를 벗기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예수님이 계신 방으로 내려주었다. 당시 서민들의 집은 들보를 중심으로 작은 나무들을 걸치고, 짚으로 덮고, 진흙으로 발라 놓은 집이다. 그래서 지붕을 뚫고 침상을 내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어려우니, 연합전술을 폈다. '네 사람'은 중풍병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과 아픔을 두고 볼 수 없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라도 중풍병자를 돕고 싶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이 해답이다. 

무관심이나 미움의 바이러스는 세상을 병들게 만든다. 아픔에 고통을 가중시킨다. 공동체를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 우리 마음 속에,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 무관심과 미움의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사랑과 관심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야 행복이 찾아온다. 

지난 주일 우리 교회 남자 집사님이 62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교회에 등록할 당시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쪽 수족이 불편한 상태였다. 부인과도 이혼한 상태였고, 불편한 몸으로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최근에는 아예 중환자실에서 의식도 없이 두어 달 누워 계셨다. 어느덧 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다니고 있고, 작은 아들은 고등학생이다. 그런데 형제를 남겨두고 눈을 감았으니, 앞으로는 두 형제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너무 힘든 장례이기에 나는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상조회사를 경영하는 우리 교회 집사님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집사님이 이미 장례식장에 운구차와 도우미가 들어가도록 해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게다. 이런 상태에서 들어가면 서로 불편하게 된다고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내가 말해놓을 테니, 집사님은 그냥 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장례식장 사무장을 찾아갔다. 안타까운 사정을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내 얘기를 들은 사무장도 다른 교회 집사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목사님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고 했다. 

그래서 상조회사를 하는 집사님이 들어오는 것을 동의했을 뿐 아니라 많은 혜택을 주었다. 집사님도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두 형제를 안타까워한 많은 교사들도 다른 장례와는 달리 많은 조의금을 전해주었다. 어느 청년은 대학생인데도 15만원을 전해주기도 했다. 

둘째 아들이 장례비를 구하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우리 교회 안에 연세 드신 권사님들의 모임인 '사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 사랑회는 서로 돈을 모아서 좋은 일을 해 왔다. 

나는 안타까운 장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사랑회에서 도움을 좀 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아진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화요 전도모임 때 기도회로 모이는데, 그때 상의해서 십시일반으로 모아보겠다'고 했다. 

화요일 발인 예배를 가기 전에 사랑회에서 돈을 모았다면서 목양실을 찾아왔다. 어느 장로님이 30만원을 보태 주시고, 10만원 혹은 5만원씩 모아 100만원이 모였다. 너무 감사해서 회원들이 모인 자리로 가서 감사 인사를 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당회 장로님들도 단톡에서 도움을 주자는 생각들을 모으는 것을 보았다. 유년부 어느 권사님과 집사님은 첫날 저녁부터 달려와 밤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었다. 가족도 친지도 없다 보니, 몇몇 권사님 집사님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와서 돌봐주기도 했다. 어느 청년은 3일 동안 장례식장에서 함께 밤을 새기도 했다. 

장례를 치렀는데, 남은 돈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도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의미 있는 장례를 집례 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가정을 돌아보려는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에 너무 너무 감사하다. 사랑에서 나오는 따뜻한 위로가 이들 형제에게 한없는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게다. 그렇다. 사랑이 해답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작품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사람은 제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받았던 사랑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주는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런데 세상이 어지럽고, 관계가 힘들어지고 아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허다한 허물도 문제 되지 않는다(벧전 4:7). 그런데 작은 허물에도 세상이 시끌벅적한 이유는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치유책은 사랑의 회복이다.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것을 김형태 교수는 지적해 준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사실 사랑은 예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이요(요 13:35),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길이며(요 13:34, 율법을 완성하는 길이다(롬 13:10). 그런데 그걸 잊고 살아간다. 

때때로 사랑할 의지와 힘이 약할 때가 많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갈 5:22).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사람들을 정복하고, 세상을 정복하자. 사랑이 해답이니까!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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