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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재심>,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입력:2017.03.07 14:55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운명(上)

 

재심
▲영화 <재심>은 경찰의 편파∙강압∙폭력수사와 증거조작, 그리고 검찰의 책임회피 때문에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10년간 수감생활을 한 조현우(실존인물 최모씨, 강하늘 분)와 그의 재심을 돕는 이준영 변호사(실존인물 박준영 변호사, 정우 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재심>과 관련해 상편에서는 본 작품의 모티프가 된 실화를 살펴보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사건의 선한 끝맺음을 위한 바람직한 용서의 조건들에 대해 고민해 보려 한다. 하편에서는 이런 부조리한 일들이 끝내 국가권력 자체에 대해, 그리고 재판관으로서 인간의 자질에 대해 어떤 회의감을 심어주는지 살펴보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법 시스템의 도래에 대해 일말의 위기감과 경각심을 갖고 전망해보려 한다.

 

 

분노하게 하라: "법으로 뭘 할 수 있는데!" 

최근 극장가에서 박스오피스 수위권을 달리고 있는 <재심(2017)>은 <이태원 살인사건(2009)>, <도가니(2011)>, <부러진 화살(2012)>, <변호인(2013)>의 뒤를 잇는 사회고발∙현실폭로 영화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러닝타임 내내 실화에 충실한 플롯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위해 일부 영화적 각색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실제 일어났던 일들을 부각해서 보여주는 데 힘을 쓴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건들은 모두 법보다는 죄악과 폭력이 가까운 암울한 현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시키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부조리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영화의 플롯이 일정한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회고발 영화의 흥행은 타이밍 포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 동일한 내용이라도 현실의 사건 진행 과정과 얼마나 절묘하게 시간적 보조를 맞추느냐에 따라 흥행성적의 폭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조금만 빠르면 묻혀버리고, 조금만 늦으면 뒷북을 치게 된다. 마치 핀포인트(pin point)를 조준하듯 대중의 관심을 정확한 시점에 자극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 관심을 자극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울화를 터뜨리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부조리에 대한 고발은 다양한 감정적 분위(分位) 중 '분노'를 집중적으로 자극할 때 비로소 효과적으로 공공의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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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외의 선전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사회고발 영화들. 관객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실제 사건을 전 국민적 이슈로 만들었다.
방금 언급한 다섯 편의 영화는 모두 비교적 적은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세간에 공분(公憤)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공소시효 만료 시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도가니>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덕에 광주 인화학교 사건이 전 국민적 이슈로 부각된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부러진 화살>은 이명박 정권 말기 정권 최고위층의 각종 부정부패 의혹이 제기되던 시기에 맞춰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으며, <변호인>은 2012년 대선 당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며 석연찮은 승리를 거둔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을 반영하며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로 남게 되었다.

 

순수 제작비를 살펴보자. <이태원 살인 사건>은 15억 원, <도가니>는 25억 원, <부러진 화살>은 5억 원, <변호인>은 50억 원, <재심>은 35억 원이 소요된 것으로 집계된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을 촬영할 때 순제작비가 100-200억을 훌쩍 넘긴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타이밍을 잘 맞춘 사회고발 영화들은 문화 콘텐츠 사업의 모범적 저비용 고효율 사례로 제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재심> 역시 적절한 개봉 시기를 포착했다. 작년 10월 국정농단 사태 발발 여파로 인해올해 초 극장가는 <마스터>, <더 킹>과 같이 권력층의 비리와 어긋난 욕망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영화들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국가권력과 행정∙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라는 것을 반영하는 증거이다.

 

더구나 <재심>은 실제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징역형을 살았던 최모 씨가 작년 11월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터라, 시기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그 결과 3월 초 현재 본 작품은 손익분기점인 160만을 가뿐하게 넘기고 누적관객 200만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판 몽테 크리스토: "엄마 나 아니라고! 나 아니라니까요..." 

<재심>이 묘사하고 있는 실화, 이른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이미 2013년 6월(898회)과 2015년 7월(997회)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의해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일이다.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다.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에서 강도가 한 택시기사를 수 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당시 오토바이로 주변을 지나던 한 15세 소년이 택시에서 누군가 뛰어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경찰에 이 사실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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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당시 현장(<그것이 알고싶다>의 재연). 당시 15세의 최씨는 범인이 도피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찰에 목격사실을 알린다.
수사가 난항에 빠지자, 익산경찰서 담당형사들은 손쉽게 실적을 올리기 위해 목격자인 15세 소년을 불법 연행한다. 이 소년은 모텔과 경찰서 지하 숙직실에 감금돼 수일간 고문을 당한 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강제로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당시 이 소년이 범인이 아니라는 정황증거가 쏟아져 나오고 여러 목격자들의 증언도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과 담당검사는 실적에 눈이 멀어 증거를 조작하고 이 소년을 형사재판에 기소한다. 누명을 쓴 소년은 1심에서 소년범이 살인죄로 받을 수 있는 최고형인 15년형을, 항소심에서는 5년 감형된 10년형을 선고받는다. 담당형사들은 관할 내 강력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한 공로로 포상을 받는다. 

3년 후인 2003년, 이 사건 진범이 최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소문이 익산시내 젊은 층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기 시작한다. 익산경찰서와 관할구역을 마주하고 있는 군산경찰서 황상만 형사반장은 이 소식을 접하고 진범 김 씨와 그의 범행을 은닉해 준 친구 임 씨를 경찰서로 소환해 조사한다. 두 사람은 범행을 자백했고 자백진술서까지 작성했지만, 담당검사는 최씨에게 누명을 씌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황상만 반장의 기소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담당검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진범 김 씨와 그의 친구 임 씨는 그간의 진술이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허위진술이었다고 말을 바꾼다. 그리고 약 한 달 동안 함께 정신병원에 입원해 경찰의 수사를 피한다. 

당시 최씨를 폭행하고 강제로 자백하게 했던 형사들 대부분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검찰에 밉보인 황상만 반장은 별다른 이유 없이 좌천성 인사발령을 받는다. 한직으로 쫓겨난 그는 정년까지 형사업무에 일절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최씨는 무고하게 10년을 복역하고 나온 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차츰 이름을 알리던 박준영 변호사(작중 이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사건발생 15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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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의 재심 무죄판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박준영 변호사(왼쪽)와 황상만 전 형사반장(오른쪽).
유명한 사건이다. 언론에 이미 자세하게 공개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전모를 알고 있다. 2013년 6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이 방송에 다뤄진 때에는 성토와 비난글 때문에 며칠간 익산경찰서 홈페이지가 마비된 적도 있었다.

 

후일 최 씨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일이긴 하지만, 최 씨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데다 술만 먹으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어린 시절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최씨가 14살 때, 그러니까 살인사건 1년 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때부터 식당 일을 하며 힘들게 살던 어머니가 최 씨를 돌봤다. 최 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일하고 살았다. 살인사건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약촌오거리 현장을 지나간 것도 한 다방에서 배달 일을 하던 중이기 때문이었다. 

담당검사와 경찰이 이런 뒷사정을 몰랐을 리 없다. 아마도 만만한 상대가 걸려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죄를 뒤집어 씌워도 아무런 뒷탈이 없는 상대, 증거를 조작해서 범인으로 몰아도 아무 힘도 쓰지 못할 사회적 약자를 수사 성과를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 일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1802-1870)의 유명한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을 연상시킨다. 뒤마의 소설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힘이 없는 한 성실한 남자가 그를 질시하는 동료들에 의해 정치범 누명을 쓰게 된다. 그가 투옥되자 생계 능력이 없는 그의 아버지는 굶어 죽고, 그의 약혼녀는 그를 모함한 자들 중 하나의 아내가 된다. 

약자이기 때문에 누명을 쓰고 인생의 소중한 시기를 빼앗겨 버렸다는 점에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누명을 쓴 최씨는 한국판 몽테 크리스토라고 부를 만하다. 단,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탈옥한 뒤 화려한 복수를 성공시킨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최 씨의 경우 15세부터 25세까지,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교도소에 복역하였다. 그 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이 나기까지, 살인범이라는 세간의 편견에 시달려 왔다. 뿐만 아니라, 출옥한 최 씨에게 2015년 근로복지공단은 1억 4000만 원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살해된 택시기사 유가족에게 지급된 4,000만 원이 수감기간 10년 동안 이자가 붙어 1억 4,000만 원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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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에서 누명을 쓴 최 씨의 상황을 열연하는 배우 강하늘. 10년의 교도소 복역 후 최 씨가 느꼈던 국가권력과 사회에 대한 짙은 배신감과 불신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재심 판결로 세간의 편견은 완전히 해소됐을 것이며, 최씨에 대한 구상권 청구소송 또한 취하되었을 것이다. 최씨는 향후 최소 1억 7,600여만 원에서 최대 8억 8,000여만 원의 형사보상금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고, 그간 재판비용도 청구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국가 혹은 경찰을 상대로 민사상 손배소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재심 판결과 금전적 보상만으로 최씨의 억울한 사정이 원만하게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당시 심리를 주관한 판사와 재판부, 담당검사를 포함한 검찰, 그리고 고문수사를 자행한 형사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 언급한 어떤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재심 판결문에서 판사는 2000년 당시 이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가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평했다. 재심 판결문은 잘못된 판결과 형벌에 대해 간단한 유감 표명만 담고 있을 뿐, 최씨에 대한 사과의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들: "몇 번이나 용서하리이까?" 

영화는 거의 대부분 실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결말부에서 극적 요소를 강화한다. 김태윤 감독은 이 영화를 사회고발 영화가 아닌 휴머니즘 드라마로 기획했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영화 전체의 시각도 주로 조현우(실존인물 최모 씨)와 그의 어머니가 당하는 극한 고통을 부각시키는 데 힘을 들이고 있다. 변호사 이준영의 분투와 마지막 무죄판결 장면이 돋보이는 이유다. 재심은 분명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극적 감동을 선사하려는 감독의 의도로 인해, 영화 속에서는 실제 사건이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부분적이나마 희석되는 듯한 감이 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문제의식, 즉 공권력을 악용해 자기 이익을 취하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피해자에게 사과 한 마디 전하지 않는 파렴치함이 그것이다. 

국민 다수가 국가 최고위층의 명백한 전횡으로 고통을 당하고서도 사과 한 마디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하는 지금, 이 작품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게 해준 원동력이 바로 이 분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를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듯하여 아쉬운 점이 있다. 

이 문제의식은 기독교인들의 용서라는 문제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최 씨는 자신을 괴악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진범 김 씨와 그 친구 임 씨, 그리고 그를 모함한 검사와 담당형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만일 필자가 동일한 입장에 처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했을까?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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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의 재심 장면에 등장한 이준영 변호사(실존인물 박준영 변호사).


영화에서는 사뭇 묻힌 감이 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사건에서 최 씨에게 죄를 지은 자들 누구도, 최 씨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최 씨의 무죄를 밝혀 주려다가 한직으로 쫓겨난 황상만 전 반장이 2015년 재심청구 과정에서 최 씨를 만나 절절하게 사과한 적이 있을 뿐이다. 황 전 반장은 "사건을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마음 아프게 사과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의 대화다.​ 

"네가 최XX냐?"

"네, 맞습니다."
"아이고...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너를 정말 풀어주고 싶었어. 근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네. 10년 동안 고생 많았다. 내가 진범을 정말 잡고 싶었거든... 정말 잡고 싶었어. 어쨌든... 미안하다." 

황 전 반장의 사과에 대한 기사를 보면 1993년 개봉작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유태인 학살에 적극 동참한 진범들이 2차대전 패배에 망연자실하는 동안, 정작 1,100여 명의 유태인들을 살려내기 위해 전 재산을 다 써버린 쉰들러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좀 더 살릴 수 있었는데... 나는 너무 많은 돈을 헛되게 써 버렸어. 왜 이 금배지를 갖고 있었을까? 이거면 두 사람... 아니 최소 한 사람은 더 살릴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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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중 더 많은 이들을 살리지 못했다며 심하게 자책하는 쉰들러. 그가 과연 유태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인물이었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용서받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정작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안면몰수하는 것이 인세의 현실인 듯하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조건 전심으로 용서하는 데 힘써야 하는가? 그렇다면 대체 하나님의 공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 가르치신 바 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마 18:21-22)." 일반적으로 이 말씀에 대해 오해가 많은 듯하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면 490번이라는 말이다. 막대한 횟수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내게 죄를 490번 지어도 용서하라니! 

그런데 이 횟수 때문에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용서의 과정에 대해, 주께서는 분명한 단서를 다셨다.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4)." 여기서 "내가 회개하노라" 하는 말에 과연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담아야 할까?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면, 그 기준은 분명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다. 마음 속 생각을 모두 관찰하시는 그분 앞에서 단 한 톨의 거짓됨도 없는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담아야 그 회개가 비로소 인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진범을 비롯해 최 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담당검사와 형사들, 맹목적으로 검사 편을 든 판사, 그리고 나아가 그런 이들을 현재까지도 용인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최 씨에게 사죄해야 할까? 구속된 진범 김씨는 향후 징역형을 마친다 해도 평생 최 씨에게 빚진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고, 당시 판사, 검사, 형사들도 최 씨에게 찾아와 진정한 회개의 자세를 갖고 사과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누명을 씌운 공직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직분상 강력한 징계 혹은 제재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사과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진범 김 씨를 은닉해 준 임 씨는 2012년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불안감 때문인지 자살을 택했다. 작년에는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경찰관이 자살을 택했다. 그는 최 씨를 고문하고 거짓된 자백을 유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이는 어쩌면 하나님과 피해자 앞에서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은 자들, 그래서 용서받지 못한 자들의 운명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일지도 모른다. 

다만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파괴적 사례이기에 우리에게 착잡함만을 더해 줄 뿐이다. "내가 회개하노라"는 그 마음과 자세를 가지려 했다면, 결코 자살이라는 서글픈 선택지로 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의로부터 오는 죄책감과 불안은 자살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사죄를 통해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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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촌오거리 살인사건 담당형사 중 한 명은 작년 11월 불안감 때문에 자살을 선택했다.
가해자들의 진정 어린 사죄와 분명한 사정조치를 바란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단 기독교인들이 이를 바랄 때, 그 주된 목적이 일반적으로 대중이 바라는 바와 같이 단죄와 분노의 해소가 아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악의의 덫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대한민국에 아직은 공의와 양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후속조치를 기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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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조차 없는 가해 공직자들을 질타하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
하지만 현실은 그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으며, 이 점이 대중으로 하여금 이 작품을 보면서 공분을 일으키게 하는 주된 원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오늘날 국가권력 전체에 대한, 그리고 재판관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재확인하고 가중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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